4대강 동계 라이딩

2011 Riding 2011. 11. 7. 10:32

이번 겨울에 도전 고려 중...

아래 출처 사이트:

http://cafe.naver.com/paulsroa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31&



12월26일 월요일 영하10도

드디어 1월2일 나는 출발한다. 집에서 출발 옥수역 부근 잔차도로에서 만나 곧바로 양평으로 라이딩해서리 하루 그곳에서 여장을 풀고 다시 다음날 출발.... 약 10박 며칠 이상으로 낙동강 경유 부산까지 약 700키로미터.

계속 몸을 헬스사이클 타며 만들어왔다.

오늘 후배들과 휘닉스 파크 스키장 1박으로 다녀오려했으나 아파트 동대표회장이라 관리소장 인수인계 문제로 포기하고 집에 머물러 있게됐다.

11월 이후 어려운 일들이 주마간산으로 지나간다. 정말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주님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되어지는 것에 기쁨의 기도를 드려본다.

몽골라이딩을마치며

2009 몽골라이딩 2009. 8. 7. 20:32



몽골라이딩을 마치며...

-들어가며

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겨울 방학이면 으레 2주 정도 전라북도 시골 전주 할머니 댁에 있었다.제일 먼저 도착해서 맡게 되는 시골 향이나를 반긴다. 도시에서 자란 나로서는 무척이나 이국적인 향이다. 할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며칠에 한 번은 꼭 라면을 사러 가게에 가야만했다.넓은 시골 마당 구석에 있던 큰 자전거에 몸을 싣고 가노라면 자전거가 너무 커 핸들로 중심 잡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마을 진입 언덕을 올라 길게 나있는 길을 내려간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에 눈이 곳곳에 쌓여있거나 결빙된 부분이 많아 나에겐 큰 모험이었다. 그래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먹기 위해서라면 이만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드디어 큰 미루나무 옆에 자리한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라면 몇 개 집어 들고 나오는 날에는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신나게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빈 양푼을 석유 곤로 위에 올려놓고 끓여 먹는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성경을 정독한 어느날 나는 광야생활이라는 키워드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모세가 40넘어 광야생활 40년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광야에서 40년 어디 그뿐인가 이삭이 광야에서우물을 파면 빼앗기고 또 파면 빼앗기고 야곱의 아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상에게 팔림을 당한 곳이 바로 광야가 아니던가. 나는 양을 키울 수 있는 광야를 보고 싶었다.


40을 넘어 사십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내 어린 시절 시골길과 성경의 광야를 찾아 선택한 곳이 몽골이다. 드넓은 초원과 거친른 황무지 그리고 모레 사막이 있는 우리와 가깝고도 친근감이 느껴지며 우리 얼굴과 사뭇 똑같은 몽골. 나는 몽골에 가고 싶었다.


-처음계획

라이딩 코스는 북쪽 징기스칸 공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600km떨어진 달란자드가드로 내려가는 1코스 이후 그곳에서 동쪽으로 500km 떨어진 샤인샌드 2코스, 마지막 샤인샌드에서 수도 울란바토르로 오는 500km 3코스 정해보았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제 1코스 완주하고 돌아왔다.


-Gps 좌표 선택

먼저 코스를 Track Maker와 Google Earth를 이용하여 메인 고속도로(차들이 많이 다니는 넓은 비포장길)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협길로 잡아 초원 속 현지인들과 수많은 양 떼 그리고 아름다운 길과 자연을 볼 수 있어 몸은 고됐지만 보람이 있었다. 나중에 현지인의 트럭에 의지해 달란자드가드에서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길은 주로 전신주가 많이 보이고 길도 넓었다. 내가 다닌 길과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내가 이러한 길로 다녔다면 숨은 비경과 정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징기스칸 공항에서 라이딩 시작

처음 몽골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 자전거에 몸을 싣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나는 초원을 향했다. 한 택시기사에게 300km나 떨어져 있는 만달고비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당황해 하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늘을 바라보니 전날 비가 내렸는지 활주로 주변 무지개가 선명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어찌나 경이롭던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공항부터 이어지는 윈도우 바탕화면의 초원이 계속해서 눈앞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선명한 산






이렇게 대 초원을 감상하며 1코스 중간 만달고비까지 거의 이루고 있다. 이 라이딩 과정에서 나는 지금가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만났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천국이 바로 이곳이라고. 영화 “The Beach"라는 영화 속 신비한 해변이 머리에 떠올랐다. 해변의 천국이 그곳이라면 육지의 천국은 이곳이라고. 나는 달리던 자전거에서 멈춰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앉아 그 천국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레 바람이 몰아친다. 돗자리로 온 몸을 감싸며 그 곳만을 주시했다. 이어 우박이 쏟아진다. 나는 그 천국으로 달려가 게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그곳에서 며칠 지낼까도 생각했지만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 더욱 값있다 여겨져 가던 길을 재촉했다.


-몸을 씻지 못하고 머리를 감지 못하는 생활

라이딩을 시작 후 300km달려 만달고비 도착 여인숙 같은 호텔에서 거의 일주일 만에 나는 샤워를 했다. 그러나 샤워기의 물은 가뭄에 콩 나듯 정말 가는 물줄기만 나왔다.

한국과 다르게 바람은 시원하고 습기가 없어 라이딩 중 땀을 흘린 적은 몇 번 없었다. 하여 목욕을 하지 않아도 해질녘 침낭 안에서 자기에는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청결을 위해 물티슈를 준비하여 단 두 장으로 온 몸의 먼지를 닦아내고 자기도 했지만 며칠 지나면서 이마져도 익숙해서인지 닦지 않고 그냥 잤다.

용변은 항상 아침에 기상하여 보았다. 멀리 초원을 바라보며 자연의 한 먹이를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풀 향기 맡으며 복부에 힘을 주어 나오는 쾌변은 역시 주님이 주신 상쾌함을 더했다.


-몽골에는 그늘이 없다.

오전 라이딩 후 나는 잠을 자야했다. 특히 점심 식사 후에는. 그러나 해뜨기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나는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여 점심을 먹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고 오후의 가장 짧은 시간대 그림자에 그래도 발이나 등이라도 햇빛을 가리며 점심을 먹었다. 때로는 자전거 그림자와 나란히 몸을 맞춰 낮잠을 잤다.


-식사

1) 아침은 비스켓 종류의 작은 사각형 모양의 비상식량 두 조각이다. 부피는 작지만 당분이 적고 수분을 덜 필요로 하며 영양이 많고 칼로리라 높은 것으로 두 조각만 먹어도 400kcal.

2) 점심에는 전투식량으로 찬물을 넣어 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550kcal.

3) 저녁은 라면 1개 끓여 먹어 450kcal.

4) 물은 간혹 가게를 발견하여 구입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물 1.5리터 한병 한병이 모두 사막 라이딩에서 무거운 짐이라는 점이다. 즉 내 짐만해도 거의 처음에는 25kg이며 후반부들어 20kg이었다. 여기에 충분한 물 확보라는 명분으로 물 한 병만 추가해도 라이딩이 무척이나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하여 나는 항상 0.5리터 2병 자전거 밑에 달고 1.5리터 두 병 짐칸에 메고 다녔다. 이 것이 기준이었으며 조금 모자라도 그날 저녁 라면을 끓여먹기는 힘들어진다. 물론 남게 해도 그만큼 짐이 되어 라이딩에 부담을 주게 된다. 따라서 적절한 부피의 물을 항상 유지하기 위해 지나는 차량에게 구걸해야한다. 구입할 수 없기에 구걸을 통해 나는 물을 거의 조달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 가장 체력 소모가 많고 일조량이 많아 라이딩에 많은 칼로리가 필요한 시간대라고 생각했다. 해서 점심을 한식으로 준비했고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특히 찬물을 부어 먹는 된장국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전투식량은 모두 비빔밥이었기에 들어있는 고추장을 넣어 비볐더니 라이딩중 매운 맛에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하게 되어 소중한 물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후 고추장은 버렸으며 고소한 맛 비빔밥과 된장국의 조화는 최고의 식사가 되었다. 저녁때는 그래도 마감하는 시간이고 시간도 많기에 가스버너를 이용하여 냄비에 라면을 끓여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현지인과의 게르생활

멀리 위성안테나가 보여 캠프로 생각되어 다가갔는데 게르였다. 다행히 주인장 큰 딸이 영어를 조금하여 그 집 앞에 탠트를 치고 하루동안 그들과 생활을 함께 했다. 내가 큰 손님이었는지 염소 한 마리도 잡아 삶고 나도 합석하여 삶은 내장을 몇 점 먹었다. 초원에서 말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며 그들과 함께 양털도 깎고 염소젖을 짜며 그들이 내온 여러 음식을 먹으며 하룻밤을 보냈다. 그들이 사용하는 연료는 말로만 듣던 가축 똥이었다. 정말 냄새 없이 잘 탔다. 물이 귀해 그들은 주전자에 물을 부어 조금씩 사용하며 세수를 했고 아침이면 배변을 보기 위해 게르 정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게르를 바라보며 자세를 취했다. 사실 처음 텐트가 눈에 띄어서 왔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여성 전용 화장실이다. 게르 안에는 간이 침대 두 곳이 있었는데 주인장 가족과 처제가족 이랑해서 모두 어른 4, 큰 아이들 4명 모두 8명이 수식을 함께한다. 아마도 침대를 빼면 6명 모두 땅 바닥에서 잠을 잤다는 계산이다. 주인장은 유모와 많은 지식을 사람으로 내게 많은 배려를 베풀어주어 고마웠다. 떠나는 날 내 망원경이 어찌나 갖고 싶어 하던지 주고 싶었지만 사막에서 나도 확인할 것 들이 있어 줄 수는 없었다. 아마도 주었다면 몇날며칠을 염소 몇 마리라도 잡아주며 합숙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그들에게 망원경은 무척 귀한 것이다. 한 친척이 바지 깊숙한 곳에서 천 몇 겹으로 둘러 싼 것을 내어 보이던 것이 망원경인데 그것으로 방목하는 자신의 가축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무척 크고 무거워 보였다. 내 것은 비록 작고 가벼웠지만 그것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났다. 당연히 주인장이 탐낼만한 것이다. 비록 짧은 하루였지만 광야생활의 한 일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잊지 못할 목동의 노래 소리

시골길에서 만난 많은 목동들의 순수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소나기를 맞으며 텐트를 처던 둘째 날 몸은 파르르 떨렸고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이 비바람에 텐트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곧바로 모든 삶이 비상사태가 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다행히 비바람을 머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텔레비전에서 티벳이나 몽골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듣던 그들의 전통 목소리와 똑 같았다. 1인용 작은 텐트에 비에 젖은 옷과 양말 그리고 모든 가방들이 한데 엉켜 텐트 안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신비한 마음에 환풍구를 열어 내다보니 말 두 마리와 함께 한 소년이 내게 다가와 뭐라 말했다. 히죽히죽 웃으며. 나는 디카를 들이대며 셔터를 눌렀다. 소년은 짓궂게 나를 보기 위해 환풍구 안으로 고개를 기웃거린다. 내가 경직된 소리를 내자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말을 타고 돌아갔다. 망원경으로 보니 환풍구 정면으로 멀리 게르 두 체가 있었는데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있지나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한 동안 계속 그 게르쪽을 주시했다.


-길에서 만난 사이나 & 러시아 트럭





중간지점 만달고비가 가까울수록 길은 초원에서 사막으로 변해갔다. 그 사막 한 가운데서 물을 구걸하다 만난 사람이 ‘사이나’라는 청년아빠다. 다가가 영어로 내가 한국인이며 물이필요하다고 하니 한국말로 답하며 모든 모자란 물을 채워주던 사람이다. 또한 사막 가운데서 차안에서 무슨 송수신 안테나를 맞추더니 아내와 통화하게 해준 영리한 사람이다. 차는 출발하고 나는 뒤 이어 사막 모레길을 끌고가다 엔진 과열로 쉬고 있는 그들 사이나와 장인 일행을 다시 만나 차 그늘밑에서 쉬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 말하자면 2002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와서 3년동안 돈을 많이 벌어 몽골로 와서 포크레인을 싣고 다니는 트럭을 구입해 지금은 잘 먹고 잘 산다고 했다. 특히 한국 사장님이 자신에게 잘 해주었고 몽골에도 자신고 놀러 오기도 했다나. 그들을 뒤로 하고 나 홀로 사막을 향해 삐질삐질 자전거 타고 가던 내 모습을 차 그늘에서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들을 달란자드가드 거의 도착해서 그들을 또 만나 기쁜 마음에 모든 것 포기하고 울란바타르로 돌아왔다. 약 24시간에 걸쳐 운전했고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숙소와 비행기 탑승 날짜 변경을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다. 아울러 자기 집에 초대(?)대 해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까지 했다. 그들과 함께한 차 안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나는 러시아 트럭이 그렇게 고장이 잦은 줄 몰랐다. 일단 엔진 과열로 3번 쉬고 엔진에서 무슨 오일 누수로 1시간 고치고 펑크로 1번 그리고 물웅덩이에 빠져 삽질하고 아무튼 10년은 돼 보이는 트럭인데 작년에 구입한 차란다. 가격은 고작 1천만원. 그리고 러시아 트럭은 원래부터 새차도 고장이 잦으며 수리하며 쓰는 차라고 한다. 해서 이왕이면 돈이 비싸도 현대나 외제차를 구입해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내가 하루 종일 탑승하여 타보니 승차감은 전혀 없고 내부 모든 버튼부터 레버 심지어 윈도우 브러쉬에 이르기까지 정말 조잡한 느낌이다. 일단 더운 날 엔진이 뜨거워지면 식히기 위해 30분 이상 그늘에서 엔진 끄고 멈춰 있어야한다. 물론 러시아 타이어는 금방 닳고 펑크가 쉽게 난단다. 완전 고철 덩어리로 대충 만든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무척강하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차 외양은 무척 강인한 느낌과 엔진 힘이 좋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판단

여행 중 직감적으로 망설임이나 위기가 느껴질 때 주로 호기심에 따라 판단이 이루어 졌다.

라이딩 첫날 초원에서 말 탄 목동이 내게 다가와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에 군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갔던 일, 결국 초원 한 가운데 오아시스를 만나 처음으로 시원한 물로 모든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몽골 초원과 사막을 라이딩하며 항상 만나는 게르는 역시나 개와의 전투를 꼭 치루어야만 했다. 서로 직각으로 만나 서로를 의식하며 달려보지만 결국은같은 목표지점 꼭지각을 향해 서로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스릴(?)만점이다. 나는 최소 저 꼭지각을 주시하며더욱 멀리 달아나야하고 개는 무작정 나를 향해 다가오고 죽어라 달리는 내게 빠른 네 발로 긴 혀를 내밀고 하얀 이를 보이며 우렁차게짖어대는 소리는 지금도 소름이 오싹하다. 다행히 개는 자신의사정권에서 벗어나면 대체로 목표물을 놓아주었던 것 같다. 행여나 달아나던 길이 모래밭이었다면 분명1:1 전투를 벌여야하는 극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을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보길 원했는데 아쉬움이 있다. 어쩌면 시간이 걸려도 멀리 돌아가면 어느정도 안정권이었을 것을 굳이 끝까지 고집부리며 긴박한 쫓김을 선택한 것도 재밌을 것 같은 호기심때문이었던 것 같다.

길 위에 통행금지라는 뜻으로 놓여진 돌멩이 차단막을 보는 순간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이 길을 선택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물이 떨어져 지나는 차량에 구걸했을 때도 물이 없어 죽겠다는 갈급한 생각보다 거지의 입장에서 구걸의 느낌을 경험한다는 점에 오히려 즐거웠다.

초원에서 처음으로 게르체험을 했던 곳도 사실은 캠프장으로 오해해서 벌어진 헤프닝 이었지만 호기심 발동으로 하루를 결정했고

돌아오던 날 몽골 공항에서 낯선 몽골 인이 자전거 패킹을 돕겠다며 다정하게 다가와 자신의 택시로 나를 태워 포장지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슈퍼를 돌아다닐 때 혹 내가 나쁜 소굴로 끌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어 차 안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심지어 차를 정지시켜 내려야겠다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끝까지 잘 되리라 믿고 그를 따라다녔던 일,

이후 대기를 만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말에 선 듯 응했을 때도 사실은 너무 불안했다.

지금생각해보면 불안하다는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안심한 쪽으로 판단했다면 내게 아름다운 장면이나 순박한 사람과의 만남은 결코 이루어지질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최소 살아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끝까지 견뎌보자는 마음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였다고 본다. 바로 그 확신은 주님이 주신 것이고 비록 좁쌀 같은 내 믿음이었지만 끝까지 쥐고 놓지 않고 다녔던 것이다.


-기억에 남는 사진들







만달고비 약 50km 전일 것이다. 모래 길과 돌길로 이어지는 가운데 체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달리고 있을 무렵 맞은편 길에서 오토바이에 가운데 여자 앞뒤로 남자 청년이 타고 있었다. 내가 정지하니 그들도 정지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이상했다. 뭐랄까 아무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복장과 표정을 지닌 그런 모습이었다. 나는 디카를 들고 찍어도 되겠냐며 포즈를 취했더니 그들이 좋단다. 오잉~ 잘 됐다 싶어 얼른 셔터를 눌렀다. 역시 내가 원하는 작품이었다.


산 위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때마침 나는 만달고비 방향을 물어보기 위해 할어버지께 방향을 물어보았고 내가 가는 길이 정확하다는 확답을 얻었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다소 서양적인 외모였지만 손자는 전혀 아니었다. 마치 너무 못 먹어서 배가 부른 것처럼 배는 배꼽이 보이도록 나와있고 눈동자는 풀려있었다. 물론 신발은 다 떨어진 운동화에 바지는 태어나서 그렇게 헤진 바지는 처음 보았다. 아무튼 양해를 얻어 사진 한 컷 남겼다. 다시 길을 이어 가고 있었다.

멀리 세 명의 아이들이 그다지 볼 것 없는 황량한 깊고 넓게 파인 구덩이를 향해서 뛰어가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더니 다시 길 쪽으로 다가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쯤으로 보인던 그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잘 씻기고 어느 정도 정상적인 옷으로 입혀만 놓아도 충분히 예쁠 아이들의 외모였기 때문이다. 특히 예쁜 미소와 홀쭉한 외모를 지니 한 여학생은 무척이나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입은 옷과 발의 신발은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가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포즈를 취해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6.25직후 미군 병사가 거리의 한국 소년들을 찍는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 해 보았다. 그래 마음에 들면 내가 한국 데려가 양자로 삼을까. 이생각 저생각하는 사이 맞은편에서 오른팔에 기브스를 한 할머니가 오셨다. 아마도 그들의 어머니인지 할머니 인지 나로서는 구분이 되질 않았고 그분도 사진에 넣었다.


-좋아하는 먹 거리

라이딩 중 어느 도시나 도착하면 제일 먼저 들리는 곳이 상점이다. 주스나 탄산음료를 제일 먼저 찾는다. 진열대 위에서 이 것들을 발견하는 순간 동공에 힘을 받는다. 일단 한 병 주문해서 한 번에 주~욱 들이킨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아이스크림 있으면 또 먹어본다. 마찬가지로 만달고비 도착해서 제일먼저 망고 주스 한 병 마시고 부드러운 시모나(빵 사이에 아이스크림) 먹고 이후 과자 빵 여러 종류 먹을 것 등을 산다. 수입품을 대체로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싸고 현지 상품들은 싸다. 빵 종류는 먹을 것이 거의 없었지만

요거트 종류는 양도 많고 가격도 500원 정도다. 처음 나는 바나나 우유라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껄죽한 것이 알고 보니 요거트였다. 우리 것처럼 달지 않고 신맛이 강한 걸보면 몸에 좋을 것 같다.

망고주스는 익숙한 맛이라 설명할 것은 없는데 사과주스가 있어 구입해 먹는데 약간 상한 사과 같은 맛이다. 지방에서도 수도에서도 같은 것이 있는 걸 보면 분명 몽골에서 지명도 있는 음료라 생각했다. 그래도 몽골에 익숙해지기 위해 두 번 사서 먹었다.

웨하스는 부피와 양이 무척 많다. 일반 투명 투박한 비닐 포장이고 생산 정보가 전혀 없다. 그런데 대형 슈퍼에서 판매한다. 가격은 450원. 맛은 우리 것과 비슷하고 크림 맛 보다 설탕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라면은 태국, 중국산 것도 먹어보았지만 이곳 라면도 부피에서 무척 적다. 일본 것은 중간. 생각해보면 우리 라면은 양이 많은 편이다. 몽골 라면은 양이 제일 적었던 것 같고 주로 뜨거운 물에 면을 넣어 몇 분 기다린 후 먹는 사발라면 먹는 방법으로 먹는다. 모텔 공동 샤워실에 다행히 뜨거운 물이 나왔다. 하여 이 물 받아 그릇에 몽골 라면 넣고 잠시 기다린 후 시식에 들어간다. 향도 맡아보고 생라면 조금 먹어도 보면서 이리저리 한국의 것과 비교도 해 가며 기다린다. 드디어 익은 라면이 입으로 넣어본다. 순간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경험이 또 하나 이루어 졌다는 기분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상점에서 눈을 자극하는 기타 여러 가지를 구입하여 숙소에 놓고 하나하나 먹어보는 재미는 외국에서 맛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사실 몽골에서 어떤 비싼 음식이 한국의 것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먹어본 것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세계 각지의 좋은 요리는 거의 맛보았을 것이다. 그저 이곳저곳 다니다 눈으로 보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어 하나 어렵사리 주문해서 그 음식이 내 앞에 놓여지는 순간 가이드에 의해 쉽게 내준 것이 아니기에 더욱 즐거운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 시간이 흘러 몽골을 생각하며 전투식량 라이딩 중 다리 밑에서 찬 물 넣어 먹어본다. 똑 같은 것인데 된장국 맛이 그 맛이 아니다. 만달고비 양푼에 똑 같은 라면 넣어 끓여 먹어 본다. 그 맛이 아니다. 몽골산 라면 그릇에 넣어 뜨거운 물 붇고 먹어본다. 그 맛이 아니다. 역시 고생하며 호기심에 떨리는 마음을 맛을 보아야한다. 이렇게 편한 서울에서는 맛이 틀렸다. 하하하.

-주님의 응답


1) 주님 감사합니다. 무게를 줄여주셔서

라이딩 첫날 공항을 떠나 초원으로 들어서며 마냥 경치에 온 정신을 빼앗기며 달리고 있었다. 12시 즈음 아무리 둘러봐도 그늘은 없었다. 대충 자전거 그늘에 앉아 좀 쉬다가 가까워 보이는 오름(제주도에서 그렇게 부르기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오르자. 내가 언제 또 오르겠냐. 나는 아무도 없어 보이는 길가에 모든 장비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자전거 배낭만 어깨에 메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용규 목사님의 “내려놓음”이란 책을 생각했다. 이 목사님은 어떻게 이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주님의 어떤 뜻이 있으셨기에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며 땅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오르고 있었다. 주님의 음성이 마음속에서 느껴졌다. “너가 만약 정상에 오르면 분명 네가 기분 나빠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찌할 것이냐” 나는 고개를 떨구며 “듣기 싫어요. 그래도 저는 정상에 오르고 싶어요”라고 부르짖으며 끝까지 올랐다. 30분 만에 올라 정상에서 바라보는데 내가 왔던 길과 가야할 길이 너무도 아름답게 한 폭의 그림으로 와 닿았다. “그래 바로 이 것을 보기 위해 내가 온 것이다.”라고 부르짖으며 감상하고 있는데 한 트럭이 저 멀리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했는데 내 자전거가 있던 그 위치에 정지하더니 운전자와 조수석에 있던 두 사람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목이 터져라 그들에게 외치며 내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나를 확인한 후 그들은 차에 올라타고 사라지는 듯 했다. 다가가 내 물건을 살펴보니 별다는 이상이 없었다.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출발하려는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꼭꼭 묶여있던 가방들 중에 가운데 가방 하나가 없었다. 가장 비싸보였던 것인데 그것만 빼간 것이다. 다행히 그 가방안에는 내가 먹지 않는 초코렛과 영양갱 그리고 코펠 그리고 성경책만 있었다. 여행에 별다른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른 가방을 가져갔다면 나는 그날로 모든 라이딩을 접어야했다. 예를 들어 텐트 또는 전투식량 비상식량 그리고 옷가지 및 배터리 등말이다. 다행히 나는 라이딩 첫날 점심을 먹으며 내가 준비했지만 필요 없던 간식거리들을 바라보며 버리기도 아깝고 어찌할 바를 몰라 대충 투덜대며 짐에 싣고 다녔던 것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은 그래도 내가 라이딩 중 주의를 기울이게 해 주셨고 무게를 줄여 라이딩을 좀 편하게 해 주셨다.


2) 주님 사막에서 주스와 탄산음료를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셔도 이젠 헛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마실 수 없는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는 풀코스 마라톤을 하며 목표지점이 다가올수록 물을 너무 마셔 경험 했던 것이다. 하여 나는 주님께 끝없는 돌길 위해서 기도했다. “주님 이젠 물이 많아도 마실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시다면 제발 주스나 탄산음료 좋습니다. 제게 부어주소서. 주여~”라고. 이 산골 사막 가는 길에 무슨 행인 있어 이런 음료를 제공 받겠는가. 아니면 가게라도 있어 가방에 많은 돈 조금이라도 쓸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페달을 밟았다. 도저히 텐트를 칠만한 곳도 없고 그저 전진이외에 대안이 없는 그런 길이었다. 그런데 한 언덕을 넘는데 갑자기 전신주가 보였다. 전신주라면 분명 전기가 들어오는 민가가 있다는 얘기고 아울러 숍이 있을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얘긴데. 나는 희망을 안고 달리고 또 달렸다. 드디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멀리 민가가 보였다. 망원경으로 보니 페인트 칠 된 집이 몇 제 보였다. 그래 분명 가게가 있을 것이다. 신나게 다운힐 저절로 자전거가 어느새 민가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본 맨 앞의 파랗고 흰건물들은 거의 폐가였다. 안쪽으로 일반 집이었고 그런데 민가 앞에 버스가 정차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확신을 갖고 민가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또 개가 나타나 내게 달려들어 겨우 한 청년의 도움으로 위험 모면하고 물병을 보이며 가게를 물었는데 뭐~ 의사소통 불가능하여 대충 돌아보니 역시나 구석에 상점 간판이 보였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주인 20분 후에나 나타나 자물쇠 열고 들어가니 콜라와 주스가 있었다. 나 그날 엄청 배터지게 마셨다.


3)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도다.

항상 주님이 나와함께 계시며 내 길을 인도하시리라는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확신에 찬 기도로 더욱 내 믿음이 강해진 가운데 라이딩에 임했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라이딩을 마칠 수 있었다.



-서로 왕래할 수 있는 가족들을 사귀다.



몽골 공항에서 처음도착해서 나는 딱히 정해놓은 숙박지가 없어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야했다. 이때만난 사람이 대기다. 나이 30정도이며 기혼이다. 공항에서 화물 검사 매니저로 일한다. 이 사람이 내가 잘 수 있도록 자정을 넘어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으며 다음날 아침 200달러 몽골화패로 환전 등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 내가 라이딩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던 날 오후 4시쯤 다시 이 대기를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사실 나는 도난당한 가방에 자전거 가방이 있어 자전거를 비행기에 싣기 전에 포장을 해야하는데 포장할 방법이 없어 이 친구에게 포장할 수 있는 곳을 좀 부탁을 하려던 참이었지만 공항 한 담장자와 얘기한 끝에 오늘 낮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그렇다고 밤에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해 결국 오늘 쉬는 날로 생각했다) 2만5천원에 한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쌀 푸데 자루 같은 것을 여러 개 구해 누더기처럼 테이프로 감아 겨우 포장을 마치고 쉬던 참이었다. 내가 탑승까지 약 5-6시간이 남아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하니 오히려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하겠단다. 하여 전화연락해서 아버지와 여동생이 운전하여 이곳으로 오개하고 나는 그 차로 공항가까이에 있는 그의 집에 초대받아 환대를 받았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고 과거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몇 년 일해 돈벌어 몽골로 다시 돌아왔단다. 한국말도 어눌하게 기본적인 의사소통엔 지장이 없어 우리는 호형호제하며 식사를 함께했다. 정말 타국에서 맞본 고향같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나는 기분 좋게 대가족으로 사는 그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9월 달에 한국으로 관광을 올 계획이란다. 특히 어머니 사라는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고기는 삼겹살을 최고로 하고 아무튼 별별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시간을 보냈고 나 또한 내 집으로 초대까지 해 놓았다. 사라는 공항에서 세관원으로 일하고 아버지 아무라는 활주로에서 큰 트럭으로 화물을 옮기는 기사를 했다. 나는 탑승을 위해 공항으로 나가 활주로까지 특별히 내려 가 아무라의 하는 일을 지켜보기도 했다. 자전거가 인천공항에서 45000원으로 화물칸에 실을 수 있었는데 몽골에서는 사라의 특별 배려로 공짜로 화물칸에 실을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 도착해서 몽골에 아무라하고 몇 번이고 통화해서 9월에 가족들과 우리 집에서 보자고 해 놓은 상태다.



-글을 맺으며

이번 여행은 처음에 3루트 30일 일정을 기획했다. 그러나 1루트 징기스칸 공항에서 300km 지나 중간지점 만달고비 전후로 바꿔지는 대초원과 황무지를 경험하며 굳이 사막을 수 십일에 걸쳐 마냥 달리는 것이 무의미로 다가왔다. 아울러 이번 여행의 목적이 2006년 23일동안의 중국라이딩처럼 극기가 아닌 여유 있고 어느 정도 편한 라이딩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번 일로 시행착오도 있었고 몽골에 대한 현지 경험도 쌓았으며 다음 몽골 라이딩 계획 시 보다 정확한 일정을 계획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막에서의 무리한 장거리 여행 일정보다 게르에서의 현지인들과의 유목 생활이 더욱 유의미한 것이며 다음에는 핸드폰 로밍 해 통화의 어려움을 제거해야겠다.

다음 여행시 대중교통을 이용 공항에서 달란자드가드로 내려가 그곳에서 60km떨어진모레 사막 3박 4일 라이딩을 하고 다시 울란바타르로 올라와 대기집에서 이틀 쉬고 다시 홉스골로 대중교통을 이용 도착해서 호수 350km,도는 라이딩도 좋을 것 같다.

항상 착각하는 것은 시간이 많아 홀로 수도에서 관광한다는 계획을 세워보지만 역시나 솔로로 관광지 돌기에는 전혀 감흥이 없고 외로움만 커간다. 해서 지인이 없는한 내게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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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라이딩 동영상모음

2009 몽골라이딩 2009. 8. 1. 09:54

1. 징기스칸 공항 도착해서 자전거 세팅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21047

2. 공항 나와 처음 라이딩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21072

3. 달리자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01

4. 마을진입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3844

5. 마을에서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08

6. 양들과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3889

7. 양들과2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14

8. 양들과3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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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비의 옹달샘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23

11. 고비의 오름으로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25

12. 고비의 오름 정상에서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26

13. 첫날 회상하며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27

14. 고비캠프장 점심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32

15. 비경라이딩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4017

16. 둘째날 회상하며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35

17. 야~ 덤빌껴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36

18. 게르생활1_차마시며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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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한밤의전도시도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17

40. 화물칸에서의 새우잠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19

41. 러시아트럭은 달구지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21

42. 사이나집에서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25

43. 대기집으로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26

44. 대기집에서1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59

45. 대기집에서2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60

47. 대기집에서3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63

48. 대기집에서3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64

49. 서울집에서 라면을 http://pudding.paran.com/kwakids2/10137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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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라이딩10일

2009 몽골라이딩 2009. 8. 1. 01:08


울란바토르

시내 모텔방에서 (모두 4200원)









역시나 연유 하드는 맛있다.




호텔 정문. 마치 비밀 주점문인양...




호텔 주변 건물






호쇼~(?)

튀김만두. 양고기와 야채 속. 공항 맞은편 식당에서 1인분 시켰더니 고작 만두 1개. 의사소통 부재라.

다시 손가락으로 4개 표시하여 또 왔다. 만두 1개에 400원. 결국 5개 2천원.


식당을 바로 나와 공항을 보며.



대기의 차 안에서

대기 집에서 위 부모

양 갈비 & 말 젖

양고기 만두



대기 부모님이 운영하는 집 바로 뒤 상점에서 술 선물로 받음.



대기의 할머니(90)가 사시는 게르.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할머니가 손수 해 주신 감자양고기볶음이 맛있다.

친구 대기집으로 초대 받아갔다. (아버지가 나보다 2살 나이가 어리니 어쩌면 아들이다.)

아모(딸 고1)가 방망이로 밀가루 반죽을 민다. 아버지(나를 이때부터 형이라 부른다)가 옆에서 바라본다.









대개의 취미는 개 수집 및 조련.조련사다.

명품개가 여러 마리있는데 그중 독일 세파트 및 ??? 종이라는데 아주 비싼 것이란다. 내 문외안으로 잘 모르겠다










대기 엄마의 공항 세관 사무실에서 모여 내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모텔 여주인과 사이나가 말했던마켓 공중전화를 찾아나섰지만 실패. 길가 근처 가판대에서 분당 150원주고 통

화를 겨우 시작했다. 9시 좀 넘어 몽골주재 대한한공으로 전화해서항권권탑승 날짜 변경 겨우 마쳤다.00:20 영어로 어렵게

느껴졌는데 겨우 12:20pm이란 것을 서로 영어로 통화하다 여럼풋이 알게됐다.

일단 오늘 출발 확약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돈이 많이 남아 수도 및 근처 명승지 찾아 다닐 수 있었으나 마음이 외롭

다. 기쁜 마음에 여주인에게 점심이나 함께 하자며 제의하니 좋아한다. 몽골여자인데 직업상 한국말을 조금한다. 숙소에 들어

와 짐을 챙기다 보니 여행 중 도난당한 자전거 백이 없어 분명 자전거를 화물로 들이기엔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공

항 근처 포장을 할 만한 곳이 있다는 정보도 없고 근처 상가도 없었던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불안했다. 일단일찍 공항에 도착

첫날 공항에서 날 도와주었던화물 관리 메니저 대기를 찾아 도움을 청해야겠다. 여주인에게 점심 함께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불과 20km이내인데 2만원을 요구한다. 그래도 기분 좋아 군말 없이 지불했다.

아무 직원을 잡아 대기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그는 지금 근무를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오늘 완전히 비번인지 말을 알

아듣기 힘들어 일단 포기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뭐라 말하더니 화물 관시실로 나를 안내했다. 이곳을 화물을 맡기는 곳인데

4400원을 내란다. 지불하고 있는데 포장을 하지 않아도 화물발송가능하단다. 그러나 내생각에 그것은 분명 몽골에서나 가능

하고 한국에서는 바퀴 분해하여 팩킹의무가 있을 것 같아 보다 정밀한 확인을 요구하니 다시 2층올라가 알아보더니 내 말이

맞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서고자전거 팩킹을 도와줄 곳이 없었다. 이런 역시 예상대로 또 하나의 난관 발생. 갑자기 요원인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택시기사였다. 아무튼 이사람 영어도 잘하며 나를 도와준다. 나를 택시에 태워 근처 마켓가서 질긴

마대 자루 구해함께 열심히 그것으로 덮고 테이프로 감았다.재료비 8천원으로 모든 포장을 마치지 이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기사가 자신이 나를 도와주었으니 자신에게 돈을 주겠냐고 물어보기에 나는 주겠다고 말하고 2만원을 건냈다. 만족한 표정으

로 그는 사라졌다. 사실 나는사기꾼으로 생각하며 중간에마켓가기를 포기하려했지만 끝까지 갈때까지 가 보고 싶었다. 다행

히 모든 것이 정당한 호의 끝나 기분좋게 대가를 지불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항에서 2시간 이상의 시간이 흘러 나는 마음 놓고 탑승을 기다리면 됐다. 이제서야 배에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어 기

웃거리다 기사와 먼저 들렀던 공항 맞은편 식당에 가사 호쇼를 시켰다. 내가 미리 눈으로 보아두었다 기사에게 물어본 메뉴였

다. 자리에 앉아 호쇼 손가락으로 1을 가르켰더니 진짜 튀김 만두 한 개만 달랑. 나는일단 먹고 다시 손가락으로 4를 표시하여

4개 더 먹었다. 맛있었다. 뭐~쥬스도 하나 꺼내 먹고 나는나왔다.

시간은3시 좀 넘었다. 탑승시작 11:30되려면 아직도 한참을 자야한다. 심심하다.

대기실에 누워잤다. 5시쯤 눈을떴는데 대기가 내게 다가와반갑게 맞이한다. 서로 얼싸안고 안부를 물어보니 자신은 매일 밤

에만 근무한다는 것이다.내가 저녁 식사 함께하자고 제의하자 자신의 집으로 가잔다. 지금아버지가 오시니 나보고 공항 밖으

로 나가잔다. 나는 또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약간의 망서림이 있었지만 또 호기심 발동 쾌히 승락하고 나가 sm5 비슷한 차종에

올라타고 우린 함께 집에 도착했다. 나를 위해 양갈비찜,호쇼찐 만두, 양 칼국수, 말젖 등으로 나를 대접한다.

아버지 아무라는 나이가 나보다 2살 아래다. 결국 나를 형님으로 부르고 우린 형아우가 되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9월에 서울로

가족이 놀러간다니 내가 우리집에도 오라고 제의해 아마도 이루어질 것 같다.

마당엔 취미로 여러 마리 명견을 대기는 키운다. 게르엔 92살 외할머니가 사시는데 매일 주식(감자썬것,양고기,볶음)을 직

접 요리해 손자를 대접한단다. 게르에 가서 할머니께 큰 절도 올리고 뒤켠엔 가게가 있는데 좀 작은 것 같은데 점원이3명이나

있다. 나보고 먹고 싶은 것 모두 골라 먹고 마시란다. 나는 하드를하나 골라 먹었다. 옆에서 엄마 사라가 나에게 줄 술 한 병을

골라 선물로 준다. 하하하. 재밌다. 이렇게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8시가 되어 우린 공항으로 갔다. 온가족이 공항으로 출근하

다. 아

버지는 공항 활주로에서 납작하고 큰 트럭 기사, 엄마는 세관원, 대기는수화물 취급 관리자.엄마의 사무실에 들어

갔더니 인터넷이 가능해 내 홈페이지 클릭 우리집을 보여주었더니 무척 놀란다.

드디어 탑승을 위해 티켓팅 마치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수화물 초과로 약 4만원 이상 지불해야했지만 사라의 도움으로 그냥 통

과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일을 마쳤다. 한국에서 자전거로 인해 45000원 지불했었다. 역시 아는 사람있으니 기분이 좋다. 안

으로 들어가서도 나는 활주로까지 무사히 내려갈 수 있어 일하고 있는 아무라(대기의 아빠이자 내 동생벌)를 만나 손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면세점에 들러 나는 몽골 도로집을 샀다. 그동안 전지 한 장으로 있는 2-3종류를 구입했는데 이젠 보다 세밀한

도로집을 25000원에 구입하며 다음엔 홉스굴 둘레 350km를 꿈꾸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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