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라이딩7일 52km

2009 몽골라이딩 2009. 8. 1. 01:01




아침은 항상 감사하다.

공포의 흙바람을 이기고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물이 없어 주행 능력 상실 무조건 엔진 소리 나면 구걸한다.


초원은 사라지고 계속 사막 이어진다.




이곳은 뭐지? 외양간인가



시체의 흔적.









이젠 비상물 200미리 남았다.





주저 앉아 차량 찾고있다. 망원경으로.

비참하다. 전진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





드디어 트럭 발견 물 구걸하니 가득 주고 화물칸에 있던 큰 물통 가져와 내 모든 물병 채워준다. 멀리 그 트럭 사라지고.

이렇게 사이나와의 만남은 처음 시작됐다.

사이나는 3년 동안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한국말을 무척 잘한다.



끝없는 모래 길 이어지고 끌고간다.






중간에 쉬고 있던 사이나 일행 다시 만났다.

반갑게 나를 맞이하며 차 그늘 밑으로 와서 쉬란다.

나도 점심 먹을 시간이라 전투식량 준비했는데 이들에게 쥬스와 빵이 있어 실컷 배불이 그들의 것으로 먹었다.



옆 사람은 장인으로 나이는 49살이란다. 지금 20톤에 가까운 맥주와 음료를 싣고 달란자드가지 간단다.

좋으면 나보고 함께 가잔다.

나는 당연 노.

2003년 한국 대구 지역에서 쌍용부품 공장에서 120만원 월급받은 돈으로 3년 저축하여 몽골에서 러시아제 포크레인 싣고

다니는 트레일러 3천만원에 구입하여 일하고 있단다. 먹고 살만큼 한국이 큰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그시절 사장님을 좋아한단

다. 한때 사장님이 몽골도 방문했다나.

이자리에서 핸폰 빌려줘서 처음으로 아내와 통화도했다.

이 사막 한가운데서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났다.


떠나려는 나를 안스럽게 나를 바라본다.

처음부터 자전거가 모래길로 흔들리며 기어간다.




끌고 바이크의 진수를 맛 본 날로 기억된다.



7일 52km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짐 정리하고 기념 촬영한다. 불 부족하게 출발하다보니 라이딩도 비틀거린다. 드디어 사막 한

가운데로 들어온 느낌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녹색은 없다. 오직 흙모래뿐. 적막하다. 지나는 차량도 뜸하고. 태양빛은

너무 강렬하고 타는 시간보다 자전거 끄는 시간이 더 길다. 물이 없으니 완전 거지다. 엔진 소리에 자동으로 튀어나간

다. 11시쯤 길 한 가운데 멈춘다. 그리고 잠을 잤다. 오직 엔진 소리를 기다리며. 멀리서 트럭 한 대가 온다. 그런데 딸

린 화물칸도 있어 느릿느릿 거의 기는 수준. 일단 다가가 물을 구걸하니 한국말로 답하며 물을 내어준다. 바로 사이나

와의 첫 만남이었다. 내게 자신의 물병 몇 개를 주더니 더 필요한지 묻는다. 나는 뭐 당연히 더 필요하다고 했더니 운

전석에서 나와 화물칸 큰 물통을 들고 나오더니 내 생수통 모두를 채워주었다. 사막에 생수공장을 만난 양 나는 탄성

이 절로 나왔다. 주님이 나에게 복을 부어준다는 생각으로 눈물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사이나는 나의 타들어가던 논

바닥에 단비를 적시듯 완전한 해갈 을 해 주고떠나갔다.

길은 완전히 사막이나 다름없다.끌기를 반복하다 12쯤 이 사이나 일행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트럭 밑으로 들어가 그

늘에서 이불 깔고 쉬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이들가까이 끌고가 쉴 생각으로 눕혀놓고 다가갔다. 그들도 내게 자리

를 만들어주며 들어오란다. 마침 이불 위에는 1.5리터 망고주스와 몽고 빵이 있었다. 내게 먹기를 권한다. 나는 주스

와 빵을 먹기 시작했다. 외로움에 식욕도 떨어진 판에 좋은 사람들 만나 도움 받으며 먹을 것까지 제공받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사이나와 이때부터 긴 대화가 시작됐다.

함께 한 사람은 장인고 지금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만달고비지나 내 목적지 달란자드가드까지 20톤이 넘는 물 맥주 음

료 등을 싣고 지금 배달 가는 것이란다. 자신은 2002년에 한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3년간 하루 12시간씩 120만원 월

급 받으며 일해 몽골로 돌아와 3천만원주고 러시아산 포크레인 싣고 다니는 트레일러를 구입해 돈 많이 벌고 안정적

인 생활을 하고 있단다. 좋은 한국 사장님 만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했

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 돈을 벌고 싶지만 기간이 만료되어 자신에게 기회가 없어 아쉽다고 한다. 내가 그렇다면 친구

들 중에 제일 부자인가 묻자 자신의 친구중에 경찰과 공무원 등이 있어 그들이 제일 부자하고 한다. 내게 디카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며 경찰인 친구를 소개 해 주었다. 이렇게 그들에서 기분 좋게 서로 대화도 하고 주스 내가 거의

다 마시고 빵도 먹고 낮잠도 자다 나는 다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이들은 나에게 함께 이 트럭으로 달란자드가드까

지 가자며 제의한다. 내 귀가 솔깃했지만 편하자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기에 내게 유혹하지 말라며 오히려 내가 그

들에게 부탁했다. 내가 전화를 얘기하니 지금 자신의 핸드폰으로 한국에 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요금도 분당 1-2백

원 정도라 나보고 해 보라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사막 한 가운데서 아내와 통화가 됐다. 지금까지 통화를 못해 걱정이

컸는데 아무튼 아내와 반갑게 통화하는데 딸 아이가 말한다. 지금 천만원 넘게 들여 화장실 공사한단다. 자신의 방 화

장실까지 모두 두 곳 리모델링이라나. 내가 한국 떠나는 다음날 제일 작은 방 북박이장 놓기로 했는데 이젠 아예 통장

을 모두 터는지.

뭐~ 아내가 좋아하면 나야 뭐 찬성이다.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졌다.

고마운 사이나, 하나님이 보내주신 내 천사다. 이들과의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웠다. 저 트럭타고 가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래도 내 길을 가야지 굳게 결심한다. 떠나는 나를 안쓰럽게 그들은 쳐다본다. 그늘에서 오랜만에 낮잠을 자고

떠나려니공기가 뜨겁다. 길을 푹푹 들어가고 2*2단으로 간다. 중간에 내려서 또 끈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그래도 끌다 타다 반복하며 어느덧 그들의 모습이한 점으로 보인다. 한 참을 가다 그들이 내 앞을 지나가며 파이팅

외친다. 고마운 사람들.

언덕이 없다 모두 평지다. 길은 직선으로 여러 길이다. 모두 모래로 파여 있어 끄는 것이 적당하다. 그래도 좀 길이 없

는 언덕으로 해서 텐트를 쳤다.

오늘 모래 길을힘들게 달려 자전거 체인이 좀 불안하다. 그것도 낮은 기어비로 힘을 많이 들여 페달링 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체인에 큰 부하가 걸렸다. 체인 절단에 아주 딱 맏는 환경이었다. 그래도 잘 견뎠다.

가방 열어 먹을 준비하는데 온 장비에 모래 투성이다. 몸에도 양말과 신발에도 그릇에도. 모래밭에서 자전거 넘어진

것 일으켜 세우다 그 사이 벌어진 가방 틈으로 모래가 많이 들어간 것 같다. 역시 꼼꼼하게 가방 정리해야하는데 말이

다. 오늘은 모래 라이딩이 힘들어 물을 많이 소비했다. 사이나 이후 만난 사람도 거의 없어 물도 공급받지 못하고 밥

을 먹고 해지기 전까지 길로 나가본다. 오는 차에 구걸하려 멀리 언덕을 주시했다. 한 참을 기다리다 한 대 온다. 벌떡

일어나 잔차 끌고 가는데 기어와 체인이 말려 바퀴가 멈춰 버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일이... 아무튼 이젠 자전거

내려 놓고 죽어라 달려 그들에게 손짓 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뭐야~ 성과도 없이 괜히 힘 뺐다. 이렇게 몇 번 하다보

니너무 초라해진다. 그래 내일 물 부족을 오늘 걱정하는 것은 분명 정신적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모래 털고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졌다. 자자. 벌판이라 바람이 거침없다. 작은 바람도 텐트에서 내겐 크게 느껴진다. 침낭에도 모래가 느껴진다.

다리에도 모래가 묻었는지 꺼끌꺼끌하다. 베개에도 머리에도. 그래도 습기가 없어 인내하면 잘 만하다.

또다시 모래 바람이 불어온다.악몽은 시작되고 한 참을 견디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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